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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Over Yet - my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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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물을 뒤집어 쓴 것 처럼, 의식이 밖으로 끌려 나온다. 밭은 기침을 토하며 엘소드는 눈을 뜬다. 창 밖은 어둡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뭐지. 무슨 일이지. 천장에 붙어 있던 회반죽 가루가 붉은 머리카락 위에 떨어진다.

침대 밖으로 기어나온 엘소드는 잠결에 들었던 굉음과 격렬하게 흔들렸던 건물을 기억해냈다.

머리 위에 희게 떨어진 가루를 털어내고 복도로 나온다. 복도는 환하다. 아직 잠들지 않았던 사람들. 혹은, 엘소드 처럼 잠결에

굉음을 듣고 나온 사람들. 당황해서 시선을 교환하는 면면이 익숙하다.

 

"지진인가?"
"여진은 없었어요. 마족의 침입은 아닌 것 같군요."
"우리 외에 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뭐야. 그럼 진짜 지진 인가?"

 

빠르게 머릿 수를 센다. 숙소 하나를 통째로 빌린 터라, 건물 안에 머무는 사람은 수색대 대원들 뿐이다. 눈으로 수를 헤아리던 엘소드가 곧 인상을 찌푸린다. 애드가 보이지 않는다. 새끼 키우는 제비 뺨 치게 예민한 자식이, 이런 소란통에 나오지 않은 것이 수상쩍다.

아이샤는 어깨에 걸친 숄을 움켜 쥐고 애드의 방 문을 두드린다.

대답이 없다.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있었으니 넘어진 가구에 깔리는 경우도 상상하게 된다. 이봐, 괜찮아? 레나가 숙소의 마스터 키를 가지고 온다. 서둘러 방 문을 연다. 어두컴컴한 방 안은 적막하다. 사람의 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구는 멀쩡하다. 침대 위에는 새로 깐 시트가 구김 없이 펼쳐져 있다. 애초에 이 방 안에 아무도 없었던 것 처럼.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졌다. 실험실에 있는 것 아닐까요? 청의 의견에 하나같이 수긍한다. 하긴 요즘 뭘 실험한다고 실험실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여하튼 일단 살아있는지는 확인 해야 하니까. 투덜거리며 엘소드는 1층 부엌 옆에 있는 임시 실험실로 향한다.

계단을 내려간다. 매캐한. 냄새가 난다. 어라. 불이라도 난 건가. 그러나 연기는 없다. 실험실에 가기 앞서 부엌을 살핀다. 화로의 불씨는 이미 죽은지 오래다. 바닥에 떨어져 널부러진 주방 기구들과 뒤집어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 일단 실험실 문을 두드린다. 치우는 건 내일 치워도 되겠지.

 

"야. 살아있냐?"

 

대답은 없다. 하여튼 손 많이 가는 녀석이다. 엘소드는 투덜거리며 실험실 문 손잡이를 붙잡는다.

손잡이가 뜨겁다.

깜짝 놀라 손을 뗀다. 손바닥이 붉게 달아올랐다. 화상까지는 아니다. 놀라서 손을 뗀 것이 크다. 기분나쁜 예감을 떠올린다. 문 밖의 손잡이가 이렇게 뜨겁다면, 문 안쪽은 어떠할 것인가.

손잡이를 힘주어 비튼다. 문을 여는 것이 힘들다. 뭔가 문이 뻑뻑하다. 억지로 힘주어 밀어 붙인다. 문 안은 어둡다. 불을 키지 않았나. 열기가 훅, 하고 흘러 나온다. 아. 이거 뭐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음식이나 나무가 탄 냄새와는 전혀 다른. 비리다고 해야할지 화하다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문 틈에서 쥐가 우는 것처럼 찍찍 거리는 소리가 난다. 문이 뭔가에 걸려서 잘 열리지 않는다. 간신히 문을 비틀어 연다. 잠깐. 여기 좀 도와줘!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위 층을 향해 소리쳐 사람을 부른다. 머리 위에서 사람 오가는 발 소리가 들린다.

문 안은 마치 용의 둥지와 같았다.

열기가 끓는다. 매캐한 것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눈이 따끔거린다. 눈물을 줄줄 쏟으며 엘소드는 문 안으로 들어간다. 연기는 없다. 실험실 스위치가 있는 벽을 손으로 더듬는다. 벽이 뜨겁다. 울퉁불퉁하다. 미끈거린다. 그리고 물컹거린다. 뜨겁게 익은 리자드맨의 피부를 만지면 이런 기분일까. 진저리치며 간신히 스위치를 찾는다. 불을 켠다. 불이 켜지지 않는다. 몇 번 스위치를 딸각거린다. 불이 켜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이 열기가. 냄새가. 뭐라도 보여야 겁이 덜 날 것 같은.

엘소드는 목소리를 쥐어 짜며, 실험실의 주인을 찾는다.

 

"대답해 애드!"

 

불이 켜진다. 갑자기 쨍 하게 눈 앞이 밝아진다. 예상치 못했던 빛에, 자신이 불을 켜 놓고도 놀라서 엘소드는 진저리친다.

실험실은 녹아 흐르고 있었다. 책상 이었던 것. 의자 였던 것. 형태만 간신히 남은체 미지근한 촛농처럼 포면이 녹아 흐른 후 굳었다. 울퉁불퉁한 벽. 천장은 마치 소의 젖처럼 울퉁불퉁하다. 엘소드는 거친 기침을 내뱉으며 손으로 입을 막는다. 눈이 맵다. 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지진도, 마족도 아니었다. 아아, 이거구나. 여기서 폭발이 있었구나.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가르며 엘소드는 실험실 안으로 들어간다. 바닥이 질척거린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신발 밑창이 찌직거리며 끈끈하게 바닥에 달라 붙었다 간신히 떨어진다.

미친 자식. 무슨 실험을 한 거야. 엘소드는 빠르게 방을 훑는다. 살아있을까. 살아있을 리가 없다. 벽이 저렇게 녹을 정도의 충격이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것이 한 때 그 자식이었던 것의 파편일지 모를 일이다. 제 또래에 비해 죽음에 익숙했지만, 이런 생경한 죽음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엘소드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다리 힘이 순식간에 풀린다.여전히 뜨거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처럼.애드는 실험실 구석에 서 있었다. 다섯평 남짓한 방의 벽을 녹여버린 폭발에도 외견상

아무 이상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폭발의 기폭제가 된 것이 그 자신이었다. 뻣뻣하게 굳은 목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뜻도 가지지 않았다. 축 늘어진 팔이 치렁치렁하다. 손가락 끝이 뻣뻣하게 경질화 된다.

엘소드를 바라보고 있던 눈이 어느 순간 빛을 잃는다. 폭발의 와중에도 멀쩡했던 옷과 몸을 찢고 불쑥, 검은 나뭇가지가 돋는다.

굳어버린 발 끝이 바닥을 뚫고 아래로 파고든다. 뿌리를 내릴 것이다. 부드러운 흙을 파고 든 뿌리 끝이 축축한 바닥을 찾는다.

뿌리 사이로 좀 더 부드러운 잔 뿌리가 뻗는다. 목 뼈를 뚫고 튀어나온 나뭇가지가 천장을 향해 자란다. 아직 양분은 넘친다.

좀 더 자라도 될 것이다.애드의 몸을 뚫고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 거침없이 성장하는 나뭇가지가 뻗을 때마다, 나뭇가지 끝 까지

확장된 오감을 느낀다. 감각. 이. 다르다. 인간의 감각과 식물의 감각이 주마등처럼 교차된다. 탁한 눈동자가 엘소드를 바라본다.

아, 너. 알고 있다. 누군지.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다. 벌어진 입에서 튀어 나온 것은 혀가 아니라. 나뭇가지다.

 

혀처럼 붉은 나뭇가지가 허공을 향해 뻗어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는 가지를 바라보는 애드의 눈. 수정체. 를 뚫고 나무가. 자란다. 꼬챙이에 꿰여 푸들거리는 은어. 같다고. 생각하며. 엘소드는. 입을 연다.그리고 비명을 지른다.

12.Labyrinth VI - The Vengeful God in the Dark Ocean Abyss ~ Unrest - Calling That Detestable Name - 세계수의 미궁 3 Arranged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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