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머니. 애드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네요. 고대 유적에 있을 때 처음으로 녹음해본 것 이후론……. 이게 처음이죠. 네. 보시다시피 그로부터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그동안 잘 지냈다는 말은 하기 힘들지만……. 네, 알아요. 저도 알아요. 어머니도 궁금하시겠죠. 제가 이런 녹음을 삼 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를요.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과연 이 녹음이 어머니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절 미래로 보내신 이유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어요. 실은 이곳에 오기 전에, 어머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어요. 울고 계셨더군요. 그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해야 할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젠 어머니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어머니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거나, 잊어버린 게 아니에요. 당신의 온실이 따스했다는 것, 당신의 포옹, 내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다정했다는 것은 다 기억해낼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거대한 스크린에 똑같은 영화를 돌려보는 것 마냥 와닿지 않게 되었어요. 아니,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의 모든 기억이 그렇게…… 흐려지고 있어요. 어째서일까요? 어머니, 당신은 내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는데.
제가 말했었죠. 이런 녹음들을 다 모아서 어머니께 드리면 기뻐하실 거라고. 누구보다 절 소중하게 대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하지만 저는 지금 어머니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어요. 점점 내가 돌아가야 할 과거를 바라보기가 힘들어져요. 분명 그리웠는데, 당연히 그리웠는데 그것이 가끔 두려울 때가 있어요. 그제야 알았어요. 내게 과거는 마냥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이 아니라 아픔뿐이 남은 기억이 되어버린 거라고요. 그러니 어떻게든, 아직 당신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 때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가끔은요, 제가, 제가 아버지처럼 닮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요. 물론 아버지의 자식이니 당연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난 절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줄곧 말씀하셨죠. 아버지는 날 사랑해주신다고. 세상에 자식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고.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어머니……. 어머니는 늘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잖아요.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요? 어머니. 정말 그렇게 믿으시나요? 아버지가 절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나소드 병기로 만들려 했던가요?
어머니. 당신이 틀렸어요, 당신이 틀렸다고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명백하게, 그리고 착실히 그를 닮아가고 있어요. 내가 그걸 느껴요. 누구보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그를 닮아가는 걸 느껴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걸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두려워요. 그를 닮아가는 것이. 근데 기뻐요. 기쁜 건지 두려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너무 기뻐요. 알잖아요. 난 당신이 남아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어요.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라고 했던 현재에 굳건히 서있어요. 그와 닮아가는 게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똑같아짐으로써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날 이렇게 만든 그 아버지란 작자와 다르게, 멍청하게 나소드에 대한 욕망을 참지 못하고 금기를 어긴 그 새끼와는 다르다는 걸……! 내가! 나는! 단순히 그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 자는 나를 실패작이라고 했으니까. ……닥쳐. 누가 누굴 보고 실패작이라고 하는 거야? 어머니……. 이게 안 들리세요? 실패자라고. 지금 그 자가 내 귓가에 말하고 있잖아요. 제발, 좀 닥쳐. 난 당신과 달라. 당신과 다르게 성공할 수 있어. 누가 누굴 보고 실패했다는 거냐고…….
……있죠, 에드워드는 실패했어요. 나약해서. 약해빠진 나머지 당신을 구하거나 홀로 도망치기는커녕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에드워드야말로 실패작인 거죠. 한심한 실패자인 에드워드는 죽었어요. 여기에 남아있는 건 애드예요. 애드로서의 나는, 완벽해요.
전 어머니를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어머니를 다시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돌아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 만약 당신과 다시 만나게 된다 해도 당신과 마주한 건 당신이 기억하는 에드워드가 아닐 거예요. 이미 미래로 보내버린 순간부터 어머니가 알고 있던 에드워드 그레노어는 죽고 애드가 남게 된 거예요. 지금의 나는 애드예요. 소름끼치도록 나소드에 삶을 바치게 된 애드라고요. 그렇다면 절 받아주실 수 있나요? 아버지처럼 그토록 경멸하던 나소드로 또 다시, 공학자가 되어버린 나를?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죠.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어머니, 전 너무 기뻐요. 행복해요. 아아……. 어머니. 내겐 당신이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손을 뻗으면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당신의 온기가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다시 기억해낼 것 없이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요. 점점 애드로서의 나만이 남아버리고 에드워드 그레노어로서의 나를 잊어가겠죠. 아니, 이건 잃어버린 거겠죠. 나는 지금 에드워드를 잃어버리고 있어요. 솔직히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어머니……. 아니, 그레이스. 당신이 누구였지? 나는 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지?
어머니. 당신은 정녕 날 사랑했나요? 진심으로 사랑해주긴 했나요? 날 사랑했기에 이 괴로운 삶을 이어나가도록 살려둔 것인가요? 그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날 이렇게 외로이 두고 가버릴 거라면,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았을 거예요.
이제 내가 돌아갈 과거는 남아있지 않아요. 나는 과거에 대해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나의 눈앞에는 뚜렷한 현실과 날 향해 팔을 벌려주는 당신의 모습, 그리고 당신과 달리 언제나 내게 등 돌리기 바빴던 그 작자의 모습이 부드럽게 섞이곤 했죠. 다행스럽게도 나의 과거를 이루는 두 주축의 경계는 아주 명백해서, 상냥한 모습의 아버지나 나소드 연구에 처절하게 매달려 내게 눈빛 하나 보내주지 않는 당신의 모습으로 기억할 일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이 길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애초에 후회할 이유 같은 건 없어요. 이를 테면, 기필코 그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 내가 그보다 나은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죠.
그러니 나소드로 시작하여 나소드로 몰락할 삶이라면 얼마든지 경멸해줄 수 있어요. 빌어먹을 기계 따위가 나의 삶을 망쳤으니까. 나는 여전히 나소드와 나소드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고, 이게 한심한 발악이나 다름없다는 걸 압니다. 막연한 힘의 추구나 그립고도 그리운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이 아니라,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음에도, 내가 실패하지 않을 것을 확실하고 치밀하게 증명해내고 싶을 뿐이에요. 코어를 작동시키는 기본적인 수식을 잠결에 떠올려도 격한 토악질이 치밀 만큼 나소드를 경멸하지만 그래도 당신과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에 놓을 수가 없습니다.
머나먼 옛날 당신이 마주잡아주었던 나의 손은 기계만큼이나 차가워졌습니다. 아버지만큼이나 증오스럽고 이것으로밖에 나의 삶을 연명할 수 없다는 것이 끔찍했지만 손가락에 물든 쇠비린내를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은 거겠죠. 그나저나 당신이 정말 누구였죠? 어머니.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했나요? 나는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나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내가?
그래요. 인정해주세요. 난 너무 지쳤어요. 과거를 향해 달려가는 것 자체가 무모했던 거죠. 당신은 이젠…… 내게,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내게는 걸림돌일 뿐이고……. 왜, 왜 갑자기, 슬퍼지는 걸까요? 당신을 잊으려니 너무나도 슬픈데……. 왜일까요,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숨을 쉬기 어려워요. 기쁘지가 않아요. 아니, 기쁜데 더 이상 기쁘지가 않아요. 두려워요, 어머니. 당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면……. 당신이 기억하고 있을 에드워드를 죽인 건 바로 나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머니, 당신은 과연 나를 어떻게……. 잠깐. 다이너모. 왜 저곳에 그녀가 있는 거지? 어째서 저곳에, 아니……. 그럴 리가. 난 실패자가 아니야. 난……. 난 당신과 달라, 그러니 제발 좀 닥쳐! 닥치라고! 난 당신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 알고 계시나요? 전 나소드가 너무나도 증오스러워요. 내 삶이 이딴 고철덩어리들 때문에 망가진 것이 끔찍해요. 나는 분명,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소드에 대한 모든 것을 혐오했습니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혐오스러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했던 나소드, 나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나소드……. 이것만으로도 나소드를 혐오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요? 하지만 언젠가, 이 빌어먹을 나소드들을 이용한다면, 날 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러니 더 이상 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끔찍하지만, 내겐 나소드밖에 남아있지 않으니까. 과거마저 잊어버린 내게 남아있는 건 없어요.
어머니. 당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요. 당신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아요. 알고 있나요? 당신의 따스함은 내게 달콤한 독이 되었어요. 당신의 품에 안겨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나를 끌어안은 당신의 팔을 잘라낼 수밖에. 그러니 당신이 말했던 모든 것을 잊겠어요. 당신을 잊을게요.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사랑했는지 전부 다 잊어버릴게요. 어머니. 사랑했습니다. 이젠 작별이에요. 정말, 작별이라고요.
……됐어. 녹음을 종료해, 다이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