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수색대 모두 2라인 2차 전직입니다.
*지루하면 끝부분만 읽어주셔도 됩니다.
*애드와 수색대 중심의 논 커플링 축전입니다.
가을이 @AT_Btalk
어두운 방안, 서류가 널브러져 있는 곳. 삐걱거리는 의자 위, 애드가 멍하니 누워 새까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 벽자의 빗금무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눈앞의 풍경. 저 멀리 말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난거지. 그늘이 가득한 눈이 무겁게 깜빡이며 붉게 부어오른 눈동자를 드러냈다 감췄다 했다. 아, 몇 분이 아니고 며칠이구나. 건조한 얼굴을 쓸어내리곤 피곤함이 잔뜩 묻어 나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깔끔한 평소와는 많이 다른 모습. 치우지 못한 방 안의 먼지는 그의 침대 뿐 아니라 꿉꿉한 그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쌓여갔던 모양이다. 일종의 슬럼프였다. 일도 실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그 덕분일까. 새웠던 가설은 족족 빗겨가고, 엘 에너지도 좀처럼 잘 모이지 않았다. 마스터마인드로 전직하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아크 트레이서에서 발전 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과거는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견딜 수 없었다. 마음은 한 없이 다급해졌고 초조한 손짓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잠을 줄이고 먹는 걸 줄이며 짧고 짧은 하루를 좀 더 낭비하기 시작했다. 수년 전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보다 더.
아마 그게 문제였던 거겠지. 방 안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오류를 범하는 횟수도 같이 늘어났고, 멀쩡하던 정신 상태도 점점 안 좋아졌다. 구석으로 몰리는 의미 모를 압박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 후 몸 상태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종이 한 장 들춰 볼 수 없는 오늘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좀 먹을 걸. 엘프 녀석의 충고가 생각났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라고.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몰려오는 불쾌함을 참으며 애써 몸을 일으켰다.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있을 수도 없고. 차라리 잠이라도 자자.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와 함께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이너모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신경적으로 벗어던지는 옷을 받아 옷걸이에 널어놓고 얇은 잠옷에 추워 할 주인을 위해 방의 온도를 높였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명령 없는 완벽한 처리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고철덩어리라는 말을 달고 살던 그는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눕혔다.
***
잠에 빠져드는 건 꽤 빨랐지만 오늘도 완벽한 수면은 불가능 하려나보다. 피곤에 찌든 애드의 앞에 나타난 것은 오래전 잊고 있던 악몽이었다.
제 허리에 올까말까 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 새까만 얼굴에서 거침없이 베어 나오는 욕설들. 망가진 라디오를 들고 서있는 어린 에드워드. 약한 것, 멍청한 것이 도태 되는 세상. 애드는 저 어린 아이가 당하고 있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자리를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 곳엔 화사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에드워드. 이제 오는 거니?"
"네, 조금 오래 걸렸나요. “
보드라운 손이 애드의 볼을 쓰다듬었다. 바람 꽃 냄새. 그리운 흔적에 저절로 미소가 생긴다.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애드의 눈빛이 그리 말하는 듯 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단다. 그를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얼굴이 그리 말하는 듯 했다. 아픔이 맺혀있는 두 눈.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레이스는 훌쩍 커버린 어린 아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에드워드. 엄마는 네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어. “
애달프게 들리는 목소리. 애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건 깨져버릴 환상이고. 도달하지 못한 목표를 애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머니가 울고 계시는 걸까 싶은 마음에. 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침묵 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어머니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런 짧은 꿈이었다.
***
애드가 잠에 빠진지 어언 9시간. 곱게 감겨 있던 귀에 레나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망할 애송이들이 또 장난을 친 건지. 설교를 퍼붓는 목소리가 한 둘이 아니었다. 뭉쳐진 소리는 꽤 소란스러웠고. 잠귀 밝은 애드의 잠을 깨우기 충분했다.
"젠장. “
흐릿하게 보이는 방 천장을 한참 노려보았다. 짜증나 다시 잠을 청하며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이미 달아난 졸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휴식을 방해 받는 기분은 썩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빈속은 울렁이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썩어빠진 애송이라고 욕을 중얼거릴 때쯤 마음 한 구석의 분노가 울컥 쏟아 났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짜증이 났다.
갈 길 잃은 분노와 논리 정연하지 못한 이성은 그의 잠을 깨운 소음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저 망할 애송이들을 죽도록 패주리라. 마음이 정해지니 행동은 쉬었다. 거친 손길로 이불을 내팽겨 치고는 문고리를 부러지라 당기며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재꼈다.
"이런 빌어먹을 애송이들이 왜 아침부터 시끄럽게 지랄이야. 마족이라도 쳐들어왔냐? 어? 단체로 마쳤냐고! “
시끄러운 등장과 함께 불어 닥친 욕설에 시끄러웠던 공간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헝클어진 곱슬머리, 흐트러진 잠옷, 붉게 눌린 볼. 누가 봐도 자다 나온 사람의 모습. 당황한 수색대원들은 그 자리에 굳어 화가 나 보이는 애드를 바라보았고, 특히 당황한 엘소드가 말음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애. 애드! 방 안에 있었던 거야? 없는 줄 알았는데!"
"뭐래 이 미친놈들이."
"그렇지만. 형은 항상 이 시간에 안 계시잖아요? 항상 부지런하시나 까요. “
어지럽게 널브러져있는 식탁을 정리하던 청이 입을 열었다. 하긴 자신이 이 시간에 방 안에 있었던가. 그런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있어도 실험 계획을 세우고 있었겠지. 그 말엔 동의하는지, 애드의 신경이 누그려 들었다.
근데 저건 또 뭐야. 그의 눈이 또르르 굴러 더러운 주방으로 향했다. 튀김옷을 입히지 않은 고깃덩어리, 케이크 반죽, 쿠키 반죽, 쏟아진 밀가루. 얼핏 보면 어린이들이 난입해 소동을 피운 것으로 보이는 꼬락서니. 평소 깨끗함을 중시하던 그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거슬리는 꼴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뭘 했기에 저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거냐?"
"쿠키를 만들고 있었느니라. 도중에 엘소드가 넘어지는 바람에 엉망이 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차근차근 아주 잘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
"잠깐, 그럼 이게 지금 내 탓이란 거야? 먼저 걸고넘어진 건 쟤네라고! “
엘소드의 손가락이 하얗게 변한 모비를 닦고 있던 이브에게 향했다. 엘소드의 말이 사실인 듯 검은 색이 반짝거리던 모비는 레비하고 구분이 가지 않은 정도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호오, 이래서 시끌벅적 했던 건가. 애드를 포함한 다른 수색대의 시선이 이브에게 닿았다. 그녀는 어디나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모비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밀가루를 들고 뛰어다니는 당신을 막으려다 이런 모습이 되었죠. 그런데 사과는 커녕 자신의 잘못을 뒤집어씌우다니. 무례하군요. 엘소드"
틀린 말 없는 지적에 엘소드의 어깨를 움츠려 들었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마치 아무도 엘소드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듯. 내뱉은 엘리시스의 한 마디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어색해졌던 공기가 빠르게 되돌아왔다. 애드도 제가 화냈던 것을 잊고 이브를 빤히 바라보다 무례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그런 그를 끝까지 보고 있던 시엘은 더러워진 앞치마를 벗으며 애드에게 성큼 다가왔다.
"졸리면 들어가 자. 이제 시끄럽게 안 할 테니까."
"됐거든. 어차피 잠도 다 깼고“
뺨을 맞을까 손으로 가리고 있던 볼을 어색하게 긁으며 시엘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애드는 저 상냥한 미소가 싫었다. 저 녀석들을 통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뭐 하러 자기까지 신경을 쓰는지. 그를 헐뜯던 찰나.
심심했던 애드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뭐. 오늘 하루만 어울려 줄까.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린 애드가 방으로 들어가며 시엘에게 조용히 말했다.
"금방 나올 테니까 기다려“
이윽고,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열리던 문이 소리 없이 조용히 닫혔다. 그 동안 열심히 딴 짓을 하고 있던 이들은 일제히 시엘을 바라보았다. 어때? 들킨 것 같아? 주방 구석에 숨어 있던 엘리시스의 눈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들키진 않았는데 곧 들킬 것 같아."
"다행이네요. 뭐 애드 씨는 이런 거에 워낙 눈치가 없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곤 있었어요."
"맞아요. 고대인 씨는 죽어도 알아채지 못 할 거예요. “
확실히 애드는 눈치가 없는 편이긴 하지. 그들은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금방 나온다고 했지? 수색대원들은 이제, 애드가 나오는 순간부터 이 비밀스러운 계획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를 속여야 했다.
***
날짜는 다 달랐지만 1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엘 수색대 모두 새로운 전직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아크 트레이서에서 마스터마인드로. 애드의 기술 또한 나날이 발전해갔다.
이는 나소드 여왕인 이브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을 달성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높게 평가됐다. 다른 이들도 그의 기술력에 감탄하고 신뢰하고 있었다. 애드 본인을 제외하고.
전직을 거듭 할 때마다 그의 태도는 더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다른 말로 하면 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했고. 지금에 만족하지 않았다.
때문에 레나를 포함한 몇몇을 시작으로, 모두가 애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혼자 겉 돌아 말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그도 소중한 동료였다.
결국 수색대는 그 몰래 모여 회의 아닌 회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제는 뭐든 애드가 좋아질 수 있을 만한 걸 찾자는 것이었다. 회의장에선 뜨거운 의논이 오갔고, 아인의 압도적인 지지로 엘소드가 발의한 의견이 채택 되었다.
그의 의견은 다름 아닌 평범한 서프라이즈 파티. 애드의 전직을 축하하는 파티 겸 모두의 전직을 축하하여 소소하게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다. 이 후 파티 날짜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결정한 그들은 애드를 속일 생각에 들떠 파티를 준비해갔다.
이것이 바로. 애드만 모르는 수색대의 어두운 내막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대망의 파티 당일. 철두철미 한 수색대원들은 애드가 숙소에 없을 때까지 기다렸고, 애드가 방에 없다는 엘소드의 확답이 나아고 나서야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애드는 자신의 방에서 숙면을 취하던 중이었고, 시끄러운 소리에 일어나 현장을 급습했다. 아마 엘소드를 너무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았다. 애드가 몰랐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모든 게 다 실패로 돌아갈 뻔했다.
수색대 모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간편한 옷에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애드는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와 한참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뭐 내가 도와줄 건 없냐?"
"응? 음. 없는 건 아닌데. 우선 저기 밀가루부터 치워주겠어?"
"다이너모. 저거 치워“
다이너모가 바닥을 청소하는 동안 깨끗한 앞치마를 둘러맸다. 덕분에 인원이 한 명 더 늘었다. 그들은 다시 파티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숙소 앞마당에 테이블을 깔고 의자를 놓고. 조화 장식과 은은한 빛은 내는 작은 초를 놓아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위에 아껴두었던 그릇세트와 식기도구를 놓고, 숙소 뒷마당에서 고개를 구웠다.
주방에선 애드의 도움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줄 아기자기한 쿠키를 굽고, 다 같이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그들은 어느새 서프라이즈 파티도, 어색했던 아까의 사건도 다 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해는 이미 뉘엿뉘엿 사라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수색대원들은 야외 테이블에 모여 앉아 다 같이 준비한 저녁상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날씨도 좋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별이 떠있는 말간 하늘은 오늘따라 더 빛나보였다.
모든 것이 완벽한 저녁의 시간이었다. 노동 후에 주어진 저녁식사라 그런가. 입에 들어오는 음식이 오늘따라 더 귀하고 맛있었다. 티타임에선 루와 아인, 애드가 만든 서툰 디저트가 웃음을 주었다. 간만에 모두가 다 같이 쉬어가는 저녁이었던 것 같다. 어제의 실패도. 기분이 나빴던 꿈도. 어느새 다 잊어버린 애드도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떠들고 있었다.
'이쯤이면 되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눈치를 보고 있던 시엘은 진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다른 디저트를 가져오나 보네요."
"이미 다 먹지 않았냐? 뭐 다른 거 더 남아있어?"
"글쎄요 적어도 고대인 씨가 만들다 실패한 케이크는 남아있지 않을까요?"
"야 너 방금 말 다했냐? 내 케이크가 뭐 어때서. 나 혼자 먹으려고 만든 거거든? 손대면 죽여 버린다."
"누가 뭐래요? 왜 혼자서 화내고 혼자서 떠들죠? 인간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죠 엘소드?"
"응! 그럼. 아무도 안 뺏어먹으니까 걱정 마 애드!"
"이 빌어먹을 애송이들이! 나중에 달라고 해도 안 줄 테니까 후회 하지나 마라."
"아무도 후회하지 않으니 그만 하거라 애드. 시끄럽지 않느냐“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가 우아한 손짓과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짐은 짐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모두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누구와는 다르게 매우 자비로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지랄. 누가 그런 케이크를 먹겠냐? 줘도 안 먹으니까 혼자 다 처먹든가"
"바. 방금 뭐시라 하였느냐! 누가 감히 짐이 주는 케이크를 거부한단 말이냐! 무례하도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똑같은데 말이에요“
하하 웃는 아인의 말에 서로 떠들고 있던 수색대원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아인의 말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물론 화가 나있던 애드와 루는 끝까지 자기가 만든 케이크가 더 예쁘고 맛있다면서 의미 없는 토론을 펼쳤지만, 완벽한 케이크를 가지고 나온 시엘의 등장으로 얼마 못가 끝나고 말았다.
시엘이 가져온 케이크는 애드와 루의 열띤 토론이 무색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웠고, 손대기도 아까울 정도로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케이크 한 가운데에 정채 모를 글씨가 적혀있다는 것 정도였다.
「 Happy Birthday Mastermind 3/13 」
오늘이 내 생일이었던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문구에 애드가 동그란 눈을 굴려 시엘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라고 묻는 시선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까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다른 녀석들도 전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다들 애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지금 다 뭐하는 짓이냐"
"보면 모르는 거예요? 고대인 씨 생일 축하 케이크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이 왜 내 생일이냐고“
애드는 당황스러웠다. 이제 다 장난인가 싶기도 하고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면 저 녀석들의 눈빛, 진지한 얼굴로 케이크를 들고 서 있는 시엘의 모습엔 한 치의 거짓말도 없었다. 모두 이 미친 소리를 진심으로 하는 것 같았다. 아마 단체로 술을 처먹은 모양이다.
"사실, 생일이라기 보단, 애드 네가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된 걸 축하하는 거다."
"맞아요. 3월 13일은 애드 씨가 아크 트레이서로, 다시 마스터마인드로 바뀌게 된 날이잖아요"
"이런 걸 우리가 아니면 누가 챙기겠느냐! 그대 스스로 그대 자신을 살피지 않으니. 우리가 대신 축하해 주는 것이니 감사하게 여기거라“
이것들이 진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에 애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누가 축하 같은 거 해달라고 했나? 아니 그전에, 이게 축하받을 인가. 붕 떴던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애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발전된 기술에 대해 칭찬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이를 먹고 몸이 성장했지만 그의 변화를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고. 어린 마음속엔 망가진 라디오 만 쌓여있을 뿐이었다. 그 때문인가. 애드는 지금의 상황도. 기쁘다는 감정도 모두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슬프고. 괴기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고. 수색대원들은 침묵하는 그를 위해 말을 아꼈다. 불빛이 일렁이는 파티 장에는 침묵이 돌았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시엘이 케이크를 내려놓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루의 말 들었지? 우리는 네가 네 기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이번 파티를 준비했어. 우리까리 저녁을 먹는 게 전부인 소소한 파티지만. 이런 걸로 나마 네게 위로를 받았으면 했거든. 너도 오늘 하루는 재미있게 보냈잖아?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고. 아마 내 기억에 네가 하루에 단 1분이라도 연구에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오늘이 처음 일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결론은 이 모든 게 널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였다는 거예요 고대인 씨"
"어때? 재미있었지? 내 의견이었어! “
자랑스럽게 말하는 엘소드의 머리를 아인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엘소드가 최고네요.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요. 고대인 씨? “
싱글벙글 비꼬는 듯 묻는 아인의 말에 애드가 입을 뻥긋 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애드는 그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아니.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지금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자신을 위해 이런 일을 준비했던 거였다. 왜 라는 물음표가 꼬리를 물고 따라왔지만 답은 정해져있었다. 너도 우리의 동료니까. 애드는 본인이 모르는 사이 이미 그들의 틈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제 기술에 대해 좋게 생각본적이 있었던가. 마스터마인드가 된 것에 대해 기뻐해 본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 덕에 안 그래도 까칠한 성격은 더 날카로워졌고,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아, 그렇구나. 애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혼란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지독한 기쁨 이었다. 낯설고 간지러운 기분 좋은 감정. 애드는 슬퍼졌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터져버린 감정은 쉴 새 없이 흘러넘쳐 보드라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는 기쁨이었다.
"애. 애드? 지금 우는 거야?"
"윽. 시끄러워! 젠장. 누가. 운다는 거야."
"아니 우는 게 맞잖아! 레이븐! 휴지! 휴지! 휴지!"
"우는 거 아니라고 망할 애송이들아! “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애써 소리친다. 누가 봐도 서럽게 우는 어린 아이의 모습인데. 당황한 수색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애드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레이븐이 급하게 가져온 휴지를 손에 쥐어주고 등을 토닥여 주며 눈물만 뚝뚝 흘리는 그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아인은 블루메 라인으로 주변을 쓸데없이 빛나게 만들고. 아이샤는 엘소드 탓하기 바빴다. 다시 소란스러워진 와중에 조용한 건 소리를 참기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애드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때도, 애드 때도. 하물며 아크 트레이서 때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감정을 주채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에게는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특히 기쁨과 슬픔은 끼는 것도 참는 것도 어려웠다. 거기가 눈물이라니. 기쁨이 배가 되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는 걸 애드는 몰랐다.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그저 창피하고 부끄럽기만 했다.
"젠장. 시끄럽다고. 내가 우는 거지 너네 우는 거냐? 좀 닥치라고! “
진지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눈물이 자동으로 멈추었다. 애드는 레이븐에게 받은 휴지로 눈물을 닦고 코를 신경질 적으로 풀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그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해하던 아리도 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같은 녀석들.
일부러 기쁘지 않은 척, 휴지덩어리를 테이블에 내려놓곤 케이크 앞에 비어있는 자리로 가 앉았다. 서 있던 다른 이들도 하나 둘 자리에 착석했고, 얌전히 서있던 시엘이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생일파티를 이어갔다. 19살을 뜻하는 초에 불이 모두 붙었다, 주변의 조명은 모두 꺼지고, 진짜 생일 인 것처럼 모두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애드의. 생일 축하 합니다!"
"야. 너 방금 너 혼자 고대인 씨라고 했지. 죽고 싶냐?"
"지금 협박하는 건가요? 신경 끄고 어서 소원이나 빌어 봐요. 엘소드가 배고파하잖아요."
"호오 그래. 소원으로 네 녀석이 하루빨리 뒈져버리게 해달라고 기도할 테니 밤길 조심해라. “
예의상 아인을 한 번 째려봐준 애드가 입김을 불어 살랑이던 촛불의 불씨를 껐다. 소원은 빌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았으니까. 마지막 촛불이 꺼지자 애드의 양 옆에 앉아있던 이브와 청이 일어나 폭죽을 터트렸다.
빈 그릇이 놓여있던 자리에 아기자기한 종잇조각들이 떨어졌고. 시엘은 애드의 손에 빵 칼을 쥐어주었다. 어서 케이크를 잘라라 애드! 참자 못한 루가 소리쳤고. 애드를 시끄러운 소음을 무시하며 정확한 비율로 케이크를 나눠 잘랐다. 누가 공학자 아니랄까 뭐 하나 흐트러지는 게 없었다.
이다음은 더 말할게 있을까. 배가고픈 애송이들은 케이크를 받아먹고, 나이가 있는 녀석들은 술을 가져와 먹으며 파티를 뒤풀이를 즐겼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이브였다. 그녀는 적당히 마시라는 경고와 함께 모비 레비를 대리고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그 다음은 청이었고. 더 이상 자신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 애드도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들어갔다. 파티의 밤은 길고 길어 해가 뜨도록 새도록 꺼질 줄 몰랐다.
역시 빨리 빠지기 잘했군. 다이너모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 보던 애드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스트레스도 나름 풀린 것 같았고, 몸이 피곤하지만 않다면 지금 당장 풀리지 않던 문제를 잡고 앉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쉴 거야.
지저분한 방 안이 신경 쓰일 법도 할 텐데, 이를 불편해 하는 기색도 없었다.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만, 뭐 내일 치우면 되겠지. 지금은 우선 자고 싶었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카락을 대충 풀어 헤치더니 씻지도 않은 몸을 침대에 그대로 눕혔다. 이불 속은 뜨끈뜨끈 했고, 단 잠에 빠져들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날 밤. 애드는 오늘도 여전히 그레이스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부드러운 손길과 포근한 품은 어제 밤과 다름이 없었는데.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고 아늑했다. 생일 축하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도. 살랑대는 꽃 내음도 모두 달큰하기 그지없었다.
아주 개운한 밤이었다.